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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1. 6. 01:36 영화

장 피에르 다르덴, 뤼크 다르덴 감독
아르타 도브로시(로나), 제레미 레니에(클로디), 파브리지오 롱기엔(파비오) 

 
 그냥 영화를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메일에 혹해서 본 하나포스 공짜 VOD. 그렇지만 볼 가치는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괜찮은 영화였어. 처음엔 로나가 무척이나 차갑고 신경질적인 사람이구나 생각했지만, 그녀가 자신의 연인을 만났을 때-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클로디의 모습에 조금은 변한 로나의 모습. 포스터에 써있는 것처럼,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것은 연민이었고, 그것 뿐이다. 로나의 사랑이 옮겨간 것은 아니다. 단지 사랑이 식었다고 표현해야 할까? 그녀는 자신을 이해하지 않는 남자친구에게서 마음이 돌아선 것 뿐이었다. 그녀 안의 마지노선이 지켜지지 않았던 상황에서, 주변은 클로디의 죽음이 당연하다고 종용하였고, 상상임신을 겪는 그녀를 이해해주지 못하였다. 당연한 일이라 그녀를 다그치는 것보다 그녀를 더 깊게 이해해 주었다면, 헤어질 일도 없었을 텐데. 왜 아무도 그녀를 이해해주지 못한걸까. 쏘콜은 너무 멀리 있었고, 파비오는 그저 계약상의 관계였기 때문일까.

 위장결혼이란 어떤 느낌일까. 감정이 없는 사람과 계약에 의해 몇 년을 같은 공간에서 생활해야 한다면, 그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 우리 나라에 시집온 동남아 아낙들이 3년이 지나면 통장을 들고 도망친다는 기사를 간간이 본 적이 있다. 또 몰지각한 남정네들이 그러한 여자들을 학대했다는 이야기도. 그에 비하면 이 영화에서 다루어지는 계약관계는 좀 더 건조한 관계지만(폭력과 감정싸움이 배제되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고 하여 사람과 사람간의 감정의 교류까지 건조하게 표현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영화에선 사람이 같이 사는 것이기 때문에 발생할 수밖에 없는 감정에 대해 더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달까, 가만히 로나를 따라가다 보면 그녀를 끌어안아주고 싶어지는 그런 것이 있다.

 영화를 보던 초반에는 벨기에도 신호체계가 거의 무시되는 나라구나, 정도의 감상 뿐이었는데, 결국엔 로나에 집중하며 끝까지 보게 되었다. 보기 드물게 괜찮게 생각되는 영화였다. 리뷰는 질이 떨어지는 언어로 쓰였지만, 여튼.
 사회 문제를 문제로써만 바라볼 것인가,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볼 것인가. 물론 모든 것은 케바케,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것이겠지만-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사람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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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