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Sinya

Notice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total
  • today
  • yesterday
2009. 10. 22. 01:05 영화

9/21 관람. 무려 한 달만에 키보드 앞에 앉다.
정기훈 감독.(데뷔작이라고 한다.)
최강희(애자 역), 김영애(엄마 역)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원래부터 애증관계인 거라고 생각한다. 좋은 행동과 좋은 말만 나오기는 힘든,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퉁명스런 말과 행동이 주가 되기도 하는 관계. 그러나 극한 상황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애정만 남는 모양이다. 빨리 떨어져 있고 싶어하던 관계에서 조금이라도 같이 있고 싶어하는 관계로 돌변한다.
 나는 예전부터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해 궁금했다. 왜 소중한 것을 항상 소중히 여기지 못하는 것일까? 대구 지하철 참사 때 휴대폰에 남겨진 어머니의 메시지-라고 한참 떠돌던 글이 있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잃고 난 뒤의 후회같은 것.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엄마를 부탁해」도 그런 종류였다. 이것은 기억의 작용인가? 고3 시절이 힘들었지만 좋았던 시절로 남는 것처럼,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모두 있었지만 일시적인 나쁜 일의 기억은 기억 저켠으로 사라져 버리고 좋은 일의 여운만 남는 것일까? '있을 때 잘해.' 라는 명제에는 별로 공감하지 못한다. 성가신 일은 성가신 것이고, 귀찮은 건 귀찮은 것이다. 그렇지만, '성가셔도 귀찮아도 가끔은 극복해서 친절한 일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잘 해드릴걸' 하는 후회가 남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보통인 것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정말 기억의 어떤 작용 때문일까.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는 것은 참 이상한 것이다. 언뜻 부모가 자식에게 퍼주는 상황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여러 매체들, 그러나 '부족하게 받은' 자식이 부모에게 헌신하는 것은 왜일까? '받던 놈은 받을 줄밖에 모르'는데, '못받던 놈이 효도하는' 것은 단순히 어릴 적 받지 못한 사랑을 나중에라도 받고 싶어서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대상에 대한 감정이 복잡하였기 때문에 극적이라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왜 나는 차별받았는가에 대해 다각도로 고민해본 자만이 내릴 수 있는 결론같은 것이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애자는 무언가 결핍한(된, 이 아니라) 상태에서- 어머니의 죽음으로 그것을 메꾸어 냈다. 그녀는 얻은 것이 있었다. 나는, 병간호를 하지 않는 한이 있을지언정, 친인의 죽음으로는 아무 것도 메꾸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굳모닝 프레지던트, 2009>>  (0) 2009.11.15
<<로나의 침묵 Le Silence de Lorna(2008)>>  (0) 2009.11.06
<호우시절, 2009>  (0) 2009.10.21
<<9(Nine), 2009>>  (0) 2009.10.10
<<드림 업, 2009>>  (0) 2009.09.13
posted by Sinya